t시월나비 2010. 10. 6. 11:29

 

 

 

 

 

 

 

 

 

 

 

    통증 

     

     허연

           

          손을 다쳤다. 다행이다.

          철학자를 한 명도 만들지 못했다는 토스카나의 태양 아래서

          손의 통증이 없었다면 난 아마

          만원 지하철에 시달리고 있을

          너를 잊었을지도 모른다.

          극사실주의 같은 풍경을 내려다보며

          손에서 배어 나오는 피를 보며

          지하철에 몸을 꽂아 넣었을

          너를 생각했다.

          아픈 다리를 잠시 쉬려고 앉은

          분수 앞에서 '죽고 싶다'는 엽서를 썼다.

          미안하다는 말을 또 썼다. 이 엽서에 얼룩으로 남을

          너의 눈물이 보였고, 투항하지 못한 시정잡배의

          심정은 엽서 위에서 추하게 반짝였다.

          혁명이나 사랑이 씻나락 까먹는 소리로 들려야 할 나이에

          난 또 집착을 만들었다. 집착을 끌고 여기까지 왔다.

          세 번쯤 망설이다 엽서는 끝내 부치지 못했다.

          어색하게 잠든 밤

          소 방울 소리와

          손의 통증이 번갈아 잠을 깨웠다.

          속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