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꺼내 보고픈 글과 시
나쁜 소년이 서 있다 - 허연
t시월나비
2010. 12. 11. 15:58
나쁜 소년이 서 있다
허연
세월이 흐르는 걸 잊을 때가 있다. 사는 게 별반 값어치
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파편 같은 삶의 유리 조각들이
처연하게 늘 한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무섭게 반짝이며
나도 믿기지 않지만 한두 편의 시를 적으며 배고픔을 잊
은 적이 있었다. 그때는 그랬다. 나보다 계급이 높은 여자
를 훔치듯 시는 부서져 반짝였고, 무슨 넥타이 부대나 도
둑들보다는 처지가 낫다고 믿었다. 그래서 나는 외로웠다.
푸른색. 때로는 슬프게 때로는 더럽게 나를 치장하던
색. 소년이게 했고 시인이게 했고, 뒷골목을 헤매게 했던
그 색은 이젠 내게 없다. 섭섭하게도
나는 나를 만들었다. 나를 만드는 건 사과를 베어 무는
것보다 쉬웠다. 그러나 나는 푸른색의 기억으로 살 것이다.
늙어서도 젊을 수 있는 것. 푸른 유리 조각으로 사는 것.
무슨 법처럼, 한 소년이 서 있다.
나쁜 소년이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