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태산을 걷다
아..방태산..매봉을 지나 구룡덕봉을 오르다..
주억봉은 다음을 위해 남겨 두다..
내가 좋아하는 낙엽이 쌓이고 쌓여 폭신폭신한 숲길..
울창한 틈새로 햇살은 스미듯 비춰준다.
참회나무 열매에 반해버린 방태산에서의 시간..
그 붉은 열매만 나타나면 셔터를 누르고 또 누르고..
고 앙증맞은 씨앗이 다음 생을 위한 아름다운 이별의 찰나..
아직 찬란한 단풍의 절정은 아니었으나 숲은 서서히 색을 입혀가고 있었다.
직접 만나긴 처음인 투구꽃..그 신비한 보랏빛이 어찌나 반갑던지..
똥을 좋아한다는 금보라풍뎅이..
사람들 발길에 짓밟히기도..
보는대로 옆으로 옮겨주긴 했으나..
노란 단풍 아래 서 있는 내 얼굴도 노랗게 비쳐났으리라..
이렇게 많은 속새는 첨 보았다.
정말 사포같았다..
흰 수피가 우아한 사스래나무
높이 오르니 언뜻언뜻 비쳐오던 흰 빛들..
자작도 아니고 거제수도 아닌..
수피가 더 너덜너덜한 물박달나무도 아닌..
바로 사스래나무..높은 산에 올라야만 만날 수 있는..
산너울과 흰 구름을 배경으로 서 있던 구룡덕봉 입구의 사스래나무를 잊을 수 없겠다..
마치 내 마음속을 살피듯
조용히 느릿느릿 걷다..
어느 한 사람도 만나지 않고 걸을 수 있었던..
구룡덕봉의 둥근이질풀..왕이질풀이라고도..
날 위해 늦도록 남아있었나..
두근거리는 가슴..
그도 지금쯤은 이울었으리라..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확 트인 바다같은 산너울들..
아마도 쑥부쟁이이리라..
고려엉겅퀴..곤드레나물이 바로 고려엉겅퀴..
사방을 바라보고..또 바라보고..
멀리 설악도 보인다는..
왠지 '위대한 존재'가 느껴지는..
해가 서쪽으로 이울어가는 시간..
하산을 위해 돌아서다.
다음을 기약하며..
그곳에도 나의 헷세의구름이 있었다..
두 녀석..대치중..무엇을 위한 탐색일까?
제 할 일을 다 마친 큰까치수영에도 가을빛이 비쳐난다..
고려엉겅퀴가 배웅을 나왔다..
잘 가라고..잘 가라고..
신갈나무들일까..
어른거리는 햇살이 아름다워서..
순응하는 그네들이 숭고해보여서..
꺾인 고목은 이제 흙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그렇게 완전히 무너져내려 하나가 되어 다시 처음으로..
붉은 잎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마지막으로 참회나무 열매를 또다시 담는다..
눈을 감고 그날의 호젓한 가을에 다시 빠져 들다..
2012.시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