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살해하다

 

백무산

 


무거운 것이 바윗덩어리가 아니라
마음인 줄 몰랐다
요지부동인 것이 쇠말뚝이 아니라
마음인 줄 몰랐다

쇳덩이가 변하고 바위가 바뀌어도
형체도 없는 마음이 쇠말뚝보다 더
움직일 줄 모른다
마음이 세상을 비추는 거울인 줄 알았더니
녹슨 청동거울보다 못하다

마음이 세상을 지시하고
입으로 마음을 발설하고서는
그 족쇄에 갇혀 움직이지 못하다
늪이 목까지 차올라온 마음이여
발설하기 두려운 마음이여

천지간 미치지 못할 곳 없는
허공보다 가벼운 마음이
태산보다 무겁구나

그러면 죄악이란 무엇이겠느냐
눈에 보이는 것들 살아 있는 것들
다 쏴죽이고서
그 시체들이나 잔뜩 쌓아두고 있는
마음이여
너를 살해한다

 

 

 

 

 

 

 

 

 

 

 

 

 

 

 

 

 

 

 

 

백무산

 

 

 

언제부터 집들을 짓고 살았을까
사람들은 저마다 적당한 안팎의 경계를 긋고
기둥을 세우고 벽을 바르고 지붕을 이고
사는 일이 저마다 집을 짓는 일일까
몸이 하는 짓을 마음도 닮아
마음도 들어앉을 집을 짓는데도
재료와 구조는 다를 바 없다
말을 재목으로 삼아
막고 이고 가리고 세우고
자기합리화의 도구로 다듬어 엮지 않으면
하루 아침에도 무너지는 집
사람의 일이란 모두 이렇게
집을 짓는 일과 닮아 있을까

 

 

 

 

 

 

 


집을 부숴본 사람 가출한 사람
쫓겨난 사람 집을 지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안다
산다는 건 자기 집 자랑하는 일이라는 것을
몸이 기거할 집이 없는 자들은 거지라 하고
마음이 상주할 집이 없는 사람은 정신이상자라 하지만

 

 

 

 

 


그런데 나는 저기 저 사람을 안다네
저 들에 서 있는 한 그루 나무 같은 사람
안팎의 집을 다 허물고 더이상 집을 지을 일이 없는
한 그루 나무 같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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