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곡

 

권경인

 

 

 

낡은 새의 깃털을 손질하면서

여름내 깊어진 해바라기꽃 그늘에 서 있었네

광포한 햇빛과 폭풍우에

맑게 씻긴 얼굴을 하고

한마리 새를 날리기 위해

날마다 하늘을 우러렀었지

비에 젖고

바람에 상할까

망설이고 또 망설이는 동안

새는 차츰 내게 길들여지고

그렇게도 그리던 하늘을

마침내 잊은 듯도 하였네

처음엔 편하고 즐거웠지만

날개는 쉬 낡아지고 눈빛마저 어두워

어느날 무심코 새장 문을 열었을 때

그것은 문이 아니고 벽이었던 것을

 

해바라기꽃 그늘을 지나

양손에 새를 들고

숲길을 오래 걸었어

좀더 멀리 날려보내기 위해

높은 곳으로 올라갈수록

새의 무게는 가볍고

하늘은 맑아

이제는 놓아주는 일만 남았을 때

문득 새는 새가 아니고 허공이었음을,

나 오직 어둠속에 지쳐 홀로 서 있음을 알았네

 

저문 바람은 나뭇잎을 떨구고

나 또한 허공으로 돌아가는 길을

묵묵히 걷고 있을 때

문득 발길에 차이는 낯선 새의 비명,

누구였던가

맑게 닦인 허무의 얼굴로

당황한 날개를 퍼득이는 그는

 

상한 새의 깃털을 손질하며

어느새 쓰러진

해바라기꽃 그늘에 다시 서 보았네

어디선가 상심해 있을 고향과

우리들의 슬픈 죄와

비밀스런 허공도 간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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