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디' 라는 말 / 김승희

 

 

 

바람은 불며

부디라는 말을 남기고

꽃송이는 떨어지며

부디라는 말을 퍼뜨리고

논밭은 하늘을 보며

부디라는 말을 올리고

폐허 가운데 지어진 병원은 하늘을 보며

부디라는 말을 남기고

세상은 어찌 보면 그런 말들로 이루어져 있고

수평선 지평선

그런 말들의 숨결

그런 말들의 안부

그런 말들의 당부로 얼룩져

나무들은 자라나며

나비는 날아가며

파도들은 춤추며

해와 달과 별들은 노래하며

장미 꽃잎 위에 장미꽃보다 더 커지는 이슬의 몸을 붙잡고

흔들리는 여자의 몸은 삐걱이며 덜그럭거리며

순식간에 무너져내리며

햇빛도 물도 바람도 숲도 바다도

부디 부디 부디......

우리의 말은 이 세상에 있을 곳이 없어

달에 가서 쌓이고......

 

 

-시집  희망이 외롭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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